1954년 한국초연 헨델의 ‘메시야’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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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시 71 : 17)

▲ 당시 사용했던 헨델의 메시야 악보

▲ 당시 사용했던 헨델의 메시야 악보

옛 사람들은 태교를 위하여 대담과 음식에 신경을 썼다는데, 요즘 와서는 모태 중 그 아이가 그 영향 받았다는 증거들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인현동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에 고색이 끼기 시작한 내리예배당과 영화학교의 벽돌 건물이 서 있었다. 예수교 가정이 아니었으므로 겉만 보고 지나쳤었는데 언제나 고요하고 엄숙한 공기가 감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세기가 열리자마자 창건된 두 건물이 이 고장 문화의 요람으로서 기여한 공적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말없이 착실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 – 신태범, 인천 한세기

한성 신태범 박사는 1912년 서울 관수동 출생. 그의 선친은 대한민국 첫 군함 함장인 신순성 씨이다. 6살 때 아버지가 인천에 정착하면서 인천 사람이 됐다. 가정여건상 비교적 부유한 유년기를 지냈다. 좋은 바탕을 가진 이분은 인천시역사에 사실적인 좋은 에세이를 남긴 귀한 분이라고 여긴다. 이 신태범 씨가 보았던 내리예배당은 미 북감리회 존스 선교사가 건축한 제물포웨슬리예배당이었다.

사라지기 전의 이 예배당을 신태범 씨는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하여 나는 그 예배당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예배당에 들어가 본적이 있고, 생각이 없었을 때에 몸만 가서 예배드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 예배당과 함께 사진도 찍혔고.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고. 이 예배당에서 한국 초연 메시야 연주가 열리는 성탄절기 밤에 있었는데, 나의 선친이 메시야 베이스 파트를 맡았을 때, 나는 모친의 태중에 있었다. 한세홍 담임목사와 찬양대원들이 ‘메시아’ 초연하던 날, 모친과 복중 6개월이었던 나는 5개월 후 다음해 5월 출생했으니,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는 말이 과할까?

아펜젤러 목사 후임, 존스(趙元時 George Heber Jones)목사가 제물포웨슬리예배당을 신축하여 190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입당하게 된다. 그리고 53년 후인 1954년 12월 22-23일 밤, 이 예배당에서 아일랜드 더블린 ‘헨델의 메시아’ 초연 212년 후, ‘헨델의 메시아 53곡’이 ‘내리성가대’에 의하여 한국에서 초연된다.

▲ 1954년 메시야초연과 인천내리교회 웨슬리예배당, 한세홍 목사와 성가대원

▲ 1954년 메시야초연과 인천내리교회 웨슬리예배당, 한세홍 목사와 성가대원

‘메시아’는 사순절 기간인 1742년 4월 12일 아일랜드 Dublin에서 자선음악회로 초연되었다. 성담곡 ‘메시아’(A Scared Oratorio 聖譚曲, Messiah)는 헨델의 친구였고 문학학자이면서 세익스피어 희곡 편집자였던 제넨스(Charles Jenens, 1700-1773)가 킹 제임스 판 신구약전서의 장절로 디자인하고 선별한 가극대본(libretto)에 헨델이 곡을 붙인 것인데, 약 2시간 20분 동안에 53곡들이 연주되었다.

서곡 Overture 1번곡, 1부 ‘예언과 탄생’ 2-21번, 2부 ‘수난과 속죄’ 22-44번, 3부 ‘부활과 영생’ 45-53번으로 구성되어있다. ‘메시아’연주는 크리스마스 전통으로서 예상되기보다는, 오히려 기독교 교리와 신앙으로 압축한 ‘메시아’의 대사로 사순절(Lent)과 부활절(Easter)을 묵상하게 하려는 의도의 작품이라 한다.

지난 날 성공도 했었다하나, 헨델은 경제적 심리적으로 극난한 시점에 이 대곡을 창작하였는데,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 좋지 않은 건강, 좌절감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거의 침식을 잊었었고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열광된 상태에서 작곡한 헨델은 44번곡 ‘할렐루야’ 부분을 앞에 놓고 눈물범벅이 되어 말하였다 한다. “나는 내 눈으로 온 하늘과 위대하신 하나님 당신을 뵈었다 생각합니다.”
헨델의 실의와 좌절이 거듭된 끝에 창작곡 ‘메시아’는 대성공이었다. 그때 성경 구절과 악곡으로 연주되어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헨델에게 살아계신 ‘메시아’였다.

더블린 초연 80년이 지날 즈음 1824년 어느 날이었다. 시성 괴테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타인들에 대한 도도한 자세로 뻣뻣하기로 유명하였던 악성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헨델에게만은 극존칭하였다 한다. Ludwig van Beethoven, “Ha”ndel sei der Meis-ter von uns allen… der gru”ßte Komponist, der je gel-ebt hat. Ich wu”rde meinen Kopf und kniet vor seinem Grab zu entdecken.”(헨델은 우리 모든 작곡가들의 스승이며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다. 나는 더욱 배우기 위하여 그의 묘소 앞에서 모자를 벗어 존경을 표하고 무릎을 꿇는다.)

1954년 당시 나의 선친은 30세로 찬양대 기획부장이면서 베이스 파트였다. 경성전력주식회사 사원의 일상 근무 후에 전동변전소 관사에서, 1954년 2월경부터 8월까지 6개월간 메시아 53곡 전곡을 등사 원지로 필경하였고, 자작 등사하였다.
메시아 악보가 3권 1질 120권이 제작되었고, 독창자 4명을 포함하여 찬양대 42명은 이 악보들로 1954년 9월부터 12월 ‘메시아’ 연주 당일까지 4개월간을 연습하였다. 이후 1년에 한번씩 세 차례 연주하였다. 그러나 1958년 12월 신축봉헌된 예배당이 화재로 전소하면서 역사적 교회사자료들과 메시아 악보들이 소실되었다. 마침 집에서 보관하던 선친의 함자 이선환 3자가 기록된 3권1질만이 남아있다. -이길극 목사

▲ 1954년 메시야초연과 인천내리교회 웨슬리예배당

▲ 1954년 메시야초연과 인천내리교회 웨슬리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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