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과정

마음 속 수도원

 

3-1

▲ 1985년 6월 11일 – 1차

새벽 예배후 조용한 시간, “꿩꿩” 소리 내며 꿩이 교회 뒤 봉재산에서 날아갔다. 동춘동은 아직도 꿩이 날아다니는 촌이다. 송도 소암 시듬물 동네 미사일부대가 영종으로 옮겨간 뒤에 송도 국제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입주하였고, 인천대교로 인천공항에 끝자락을 대고 있다.

“땍땍”하면서 때까치도 날아간다. 150미터 앞에는 15년 넘게 연수계획도시가 베드타운으로 들어와 있다. 봉재산 너머는 송도국제도시, 앞에는 연수신도시이지만 동춘감리교회는 여전히 농어촌으로 남아있다. 도시개발 동춘2구역으로 지정되어 수년 되었지만 이제나 저제나 언제 철거되어 원주민이 정착하려는가 한다.

3-2

▲ 1985년 7월 21일 – 2차

‘따딱 따딱..’하고 소리내며 화목이 교회 난로에서 탄다. 서재에도 나무 난로 옆에 화목을 쌓아두었다. 지난 4년간 목사관에도 화목 난로를 두고 때었다. 하마터면 목사관에 불이 날 뻔도 하였지. 마포중앙교회 유승훈 목사님이 교역자들과 교인들과 함께 와서 마포중앙교회 재정으로 친히 공사하여 보일러시설을 해주시어 지금은 아주 따뜻하다. 지난 주간에는 교회에 난로 연통을 갈았다. 다음 주일에는 소설이라서 그런지 날이 차갑다.

동춘동 봉재산에 입산하지 26년이다. 중국어 성경에 요한복음 1장 1절에 太初有道라고 하였는데, 道는 말씀이며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라고 요한복음 1:14절에 있다. 나이 30에 처음 개척하여 지금까지 오면서, ‘말씀’을 닦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백적인 기술을 하게 되었다.

3-3

▲ 1986년 6월 25일 – 3차

26년 도를 닦고 있지만, 아직도 미천하고, 보낸 날보다는 앞으로 살 년수가 많지 않으니, 촌음을 아껴야 되지 않는가. 앞으로도 계속 도를 닦는 심정으로 복음 전도의 길을 열어간다. 미사일이전 뒤 새성전 건축을 하여야 할 시점이 되었다.

자문하여 본다. ‘나는 내 마음 속에 은둔한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내 모습 그대로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는가.’하는 것이다. ‘마음 속 수도원’은 나 스스로 내 모습을 비추어 들여다보는 적당한 서술이라 여긴다.  묵상 – 회개 – 기도 – 성찰… 소망, 자그마한 기쁨. 지금까지 개척 담임 26년 목회는 ‘양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많은 열매를 맺은 것도 아니지만, 있는 곳에서 나아가지도 못하고 붙잡혀 있는 형국이다. 주 성령님이 인도하소서! 양보(yield)는 1. 양보하는 것, 2.항복하는 것, 3. 열매를 맺는 뜻이다.

 

 

 

 

1. Yield, 양보하다는 뜻같이 ’26년간’ 양보한 일들이 있다.

3-5

▲ 1991년 5월 11 – 4차

1984년 1년 간 인천 시내에 감리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고자 해서 물색한 곳이 남촌동이었다. 역시 개척지를 물색 중이던 어떤 전도사가 남촌동의 개척 후보지를 자신에게 양보하라고 했다. 양보해 주었다. 아직 섬기는 교회가 건축 중에 있고 해서 입당 후에 나갈 것을 기도하고 양보를 하니, 입당 후에 개척지를 다시 찾아야 했다. 마침 속회 인도차 동춘동에 가 본일이 있어서, 1985년 6월 11일 동춘동에 월 3만원  민간집 방 두 칸을 빌려서 6개월.  10 미터 옆에 닭, 돼지, 황소를 키우는 데를 월 2만원에 빌려서, 드디어 천막교회를 개척하였다.

▲ 동춘동 가을추수

▲ 동춘동 가을추수

▲ 1996년 6월 24일

▲ 1996년 6월 24일

얼마되지 않아 동춘동이 토지개발공사에 수용되어 동춘감리교회도 200평을 분양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땅 주인이 자신에게 200평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100평 씩 나누자고 하였다.  교회 부지가 200평은 있어야 될 것이었다. 나는 그만두자고 하였다.  나중에 이 땅주인이 어떻게 하였는지 관심도 갖지 않았다. 교회 개척 담임자에게 땅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었으나, 교회가 은혜스럽지 못하게 분쟁에 휘말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땅 주인은 교회를 옮겨 나가라하고 갈 데는 없고, 마침 돼지 키우는 데가 가까이 한 군데 있어서, 그곳에 전세 350만원 주고, 한옥에 기와 입힌 목사관과 교회로 개축할 축사를 마련하여 예배실 공사를 마치었다. 그러나 이곳은 동춘동 미사일 기지가 있어서, 토개공 개발지구에 들어있다가 취소되었다.

더군다나 전세들어간 데가 문중 땅이라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교회 개척 3년을 기도하던 중 88년 국회의원 선거하는 날에 손바닥만한 땅을 구입할 계기가 왔다. 쉽지않게 마련하여 성전건축 근저당을 삼았고, 적벽돌 예배당을 건축하고 나중에 갚았다. 어느날 주일 예배시간에 찬송을 주님께 드리는 중에, 교육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하도록 ‘손바닥만한 땅에 교회를 개척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받았다. 예배 후에, 곧 교육전도사와 그 형을 불러서, 교회를 개척하여 줄 것으로 하고, 동춘교회 창립 12년 된 해에 제2동춘교회로 이름하여 설립하였다.

▲ 1988년 가을 손바닥만한 땅

▲ 1988년 가을 손바닥만한 땅

동춘감리교회 개척하면서 꿈에 그리며 건축하려고 이미 철거되어 사라진 ‘인천내리교회 십자가예배당’투시도를 스케치하여 개척 첫 해인 1985년 주보 앞면에 넣었다. 준비 21년, 수차례의 시행착오 도면들. 교회 개척시에 마음 먹은 것이 21년이 되어서 도면이 완성되었다. 시공도면은 따로 건축설계사에서 마련하여야 되고, 준비한 복원설계도면을 2006년 10월 15일 주일 오후, 인천내리교회 복원위원회를 통하여 아무 조건없이 내리교회에 제공하였다. 누구든지 지으면 내가 지은 것과 다를 바 없지.

나는 제물포웨슬리예배당 시절의 내리교회 한세홍 목사님께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제물포웨슬리예배당 복원 대신에 한국인 최초 김기범목사 기념예배당을 짓기로 내리교회 담임목사와 결론을 내었다. 설계도면을 다시 준비하여야 했다.  김기범 목사는 내리교회 출신이었다.

▲ 1985년 9월 29일 개척 첫해

▲ 1985년 9월 29일 개척 첫해

109년전, 1901년 5월 14일에 김창식 전도사와 김기범 전도사가 서울상동감리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동시에 받았는데, 김창식 목사가 담임한 평양남산현예배당과 김기범 목사가 담임한 제물포웨슬리예배당, 정동교회의 버트레스, 배재학당의 현관을 병합설계한 기념예배당 건립준비였다. 내리십자가예배당(제물포웨슬리예배당)을 지으려던 21년간의 준비가 5년을 더하여 한국기독교 최초 목사 김창식 김기범 기념예배당으로 발전되었다. 26년이 되어 마음속에 건립을 추구하여 오던 기념예배당으로 ‘마음 속 수도원’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3. Yield, 열매 맺는다는 뜻에서 ‘이제는 여하튼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목기념예배당을 마음 속 수도원으로.

▲ 제물포 웨슬리예배당 투시도

▲ 제물포 웨슬리예배당 투시도

1. 초기 선교사 아펜젤러, 스크랜턴, 존스, 노블, 스웨어러 목사의 신학 강의로 한국 교역자 양성 첫 열매기념 :    김창식, 김기범 이후 한국 교역자 10만명 이상 이름을 적벽돌들에 이름들을 기록하여 조적할 것이다. 이단을 제외하고, 모든 교역자들, 감리교회와 모든 형제 교단들의 교역자들과 함께 한 평신도의 이름들을 기록할 것이다.

2. 한국감리교회의 위상 확립과 전도 목회열정의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김창식 김기범 초대 목사를 삼았다. 현재 2010년은 더욱 절실하다.

 

 

 

▲ 한목기념예배당 도면

▲ 한목기념예배당 도면

3. 교역자와 평신도가 각자의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각자 마음으로 등짐을 지고, 감리교회 크리스챤으로서 서로간에 희생봉사를 이루는 목적으로 한다. 교역자 평신도가 주민들을 섬길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과 교역자 선교사를 위한 자동차 수리를 위한 카센터 등 봉사활동으로 주민 속에 교회, 교회 속에 주민들을 인도함을 목적한다.

4.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나라가 전쟁없이 초기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와 같이 원상 통일 회복을 미리 내다보면서 제물포웨슬리예배당과 평양 남산현예배당을 병합하여 설계 하였다. 에스겔 37: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 한목기념예배당 조감도

▲ 한목기념예배당 조감도

5. 주님 오실 날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기독교 밀레니엄 세대들을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면서 예배당 건립하여 봉헌하려 함이다. 그리고 앞으로 24년 후인 선교 150주년(2034년), 200주년(2084년)과 300주년(2184년)을 위하여 무엇을 미래세대에 준비하여 줄 수 있겠는가 과제세움이다.

이것도 몸에 피가 살아 따뜻하게 돌때에 생각해 봄직한 일입니다. 퇴각도 아니고, 힘들고 어려워도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우리 한국감리교회의 역사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겸손하게 주님 앞에서 형제교단들 앞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감리교회 동역자 여러분, 우리 감리교회 목사님들과 평신도들은 자랑스러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

▲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한국기독교의 목사안수 역사적 순위를 기록하여 봅니다. 이미 우리는 겸손히 책임감을 지니고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여기에 따르는 토를 달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여 보시면 됩니다.
감리교회 1901년 5월 14일에 김창식 김기범, 1905년 침례교회는 신명균, 1907년 장로교회 방기창, 한석진, 양전백, 송인서, 길선주, 이기풍, 서경조, 1909년 구세군영문 임문상 사관, 1914년 성결교회 김상준, 1931년 대한성공회 하와이에서 조광원 신부, 1938년 오순절교회(순복음) 허  홍, 박성산, 배부근, 1953년 루터교회 지원용 이후 오늘에 이르러 각 형제 교단들에서 목사 안수를 하여 목회자들이 양성 배출되어 왔습니다.

 

 

 

▲ 평양 남산현 예배당

▲ 평양 남산현 예배당

한국기독교 최초목사 김창식 김기범 기념예배당(한목기념예배당) 건립으로 한국 초대교회의 주님사랑, 전도, 봉사, 교육이 이웃 사랑에서 나타나도록 소망합니다. 기도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십시요.
이길극 목사 올림

 

 

 

 

▲ 동춘교회설계사무실

▲ 동춘교회설계사무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 : 2-3)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 : 5)

 

 

 

 

▲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과 함께

▲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과 함께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러 봅니다.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 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 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시편 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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